양창호 교수 칼럼/화주의 자가운송, 효율성 확보할 자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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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양창호 교수 칼럼/화주의 자가운송, 효율성 확보할 자신 있나?

금년 2월 중순 국무조정실 규제영향평가 심의위원회에서 대량 화주의 해운업 진출 금지를 주요 내용으로 한 해운법 시행령 132항을 검토한 결과 국내 해운산업 발전을 위해 완화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냈다. 해운법 시행령 13조는 철강업체와 정유업체, 전력회사 등 대량화물 화주의 해운업 등록을 제한하고 있다. 화주업체들이 자체적으로 물건을 운송하게 되면 국내 해운사들이 고사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화주업계는 산업경쟁력 강화를 위해선 경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양측 입장이 대립해 왔던 사안이다. 이에 따라 2010년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에서 2013년 말까지 규제 범위를 재검토하기로 하였다. 이번 국무조정실 심의는 그 결정에 따른 후속조치였다.

그러나 이 결정이 보도 된지 불과 20여일 만인 3월 초 정부는 원유, 제철 원료, 액화가스, 발전용 석탄 등 대량 화물 화주가 구조조정을 추진 중인 해운사를 인수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이 담긴 인수합병(M&A)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사상 최악의 불황에 빠진 해운업계의 구조조정을 촉진하기 위한 조치라 하였다. 하여간 대량 수출입 화물 물동량을 가진 대기업, 대형 화주가 해운사를 인수할 수 있도록 정부정책이 급선회한 것이다.

그동안 포스코, 한국전력 등 대형 화주들은 법적으로 해운업 진출이 제한돼 있었다. 해운법 24조엔 `원유, 제철원료, 액화가스, 대량화물의 화주가 해운업 등록을 하려면 정책자문위원회의 의견을 들어 등록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이 규정은 철광석, 석탄 등의 화물 물동량 운송비중이 워낙 커 대형 화주가 해운업에 직접 진출하면 불공정거래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마련됐다.

왜일까? 국무조정실 규제영향평가 심의위원회에서 국내 해운산업 발전을 위해 대량 화주의 해운업 진출 금지를 완화할 필요가 없다고 한지 1달도 안 돼서, 정부가 관계부처 합동으로 기업 인수·합병(M&A) 활성화 방안에 대량화물 화주가 구조조정 중인 해운사를 인수할 수 있다고 발표한 것이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규제를 풀어 경제에 활력을 불어 넣고, 경제를 혁신하겠다는 기본 방향에 동의하지만, 같은 정부에서 같은 시기에 결정하는 정책이 이같이 상치된다면 국민들은 헷갈릴 수밖에 없다. 경제를 '혁신'하겠다는 정부의 의욕이 세세한 개별 산업의 상황을 보지 못한 것은 아닐까? 아니면 상위의 경제정책이 하위의 산업정책을 덮어, 개별 산업정책의 당위성이 가려진 것은 아닐까?

이 조치로 우선 지독한 경기침체를 맞고 있는 우리 해운산업에 신규투자가 이루어 질 수 있다는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 해운업 진출이 제한돼 온 대량 화물 화주가 구조조정 중인 해운사를 인수하게 되면, 국가 기간산업인 해운업의 성장동력을 다시 키울 수 있다는 면이 있다. 재무구조가 탄탄한 대기업이 현재 구조조정이 진행 중인 팬오션을 비롯한 해운기업을 인수하게 된다면 향후 해운업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이어져온 해운 불황으로 국내 해운업체들은 고사 직전이다. 국내 최대 선사인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지난 해에 이어 올 들어서도 아직까지 단 한 척의 신조 컨테이너선 발주도 하지 못하고 있다. 글로벌 선사들이 지난해부터 적극적인 신조선 발주에 나서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우리나라 1·2위 해운업체인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재무구조 개선안을 발표하고 3위인 팬오션은 법정관리, 4위 대한해운은 인수합병의 대상이 됐다. 특히 팬오션은 자칫 외국기업에 인수 합병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던 터이었다.

현재 해운업 진출에 관심이 있는 대량 화주들은 그동안 거양해운, 대우로지스틱스를 인수했거나 인수 추진하다가 중도 포기했던 국내 최대 화주인 포스코, 해운물류 강화를 공식 선언하고 금년 들어 벌크선 부문을 크게 확대하고 있는 현대 글로비스의 현대자동차, 유연탄 수입에 관심이 있는 한국전력과 발전 5개사, 한국석유공사 및 정유 4개사, 한국가스공사 등이다.

그러나 해운업계에서는 이 조치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있다. 해운업계가 어려운 틈을 타 대기업들이 자가화물 운송을 허용 받으려 한다는 것이다. 생산자가 자기화물을 직접 해상운송을 하는 것은 일종의 자가 운송사(industrial carrier)가 되는 것이다. 대량 수출입화물 화주가 직접 화물운송을 한다는 것은 해상운송을 전문으로 하는 선사에게는 위협이 될 뿐 만 아니라, 중장기적으로는 운송의 비효율성을 높여, 결국은 화주에게 그 비효율이 비용부담으로 전가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그래서 많은 나라가 대형 인더스트리얼 캐리어의 활동에 제약을 주는 조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물론 자기화물 운송 30% 제한이란 조건을 달긴 했지만, 정부가 대형화물 화주에 부실한 해운사를 인수할 수 있는 길을 터준 것은 그동안 정부가 추진해 온 제3자 물류 촉진이라는 정책 방향과도 배치되는 정책이다. 화주기업이 물류 자회사에 일감을 몰아주게 될 경우 2자 물류가 늘어나고 이는 해운 전업사들에 타격을 줄 것이라는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해양수산부, 국토교통부 등은 3자 물류에 기반을 둔 물류전문기업을 육성하겠다는 '물류산업 선진화 방안'을 금년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도 한 바 있다.

2006년에 한국가스공사의 해운업 진출을 허용할 때 LNG라는 화물에 한정하여, 3개 해운사와 합작 LNG수송회사를 설립해 해운업을 등록한 사례가 있다. 이번 조치는 이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국내 벌크화물의 30% 정도가 자가 운송사에 의해 수송되면서, 국내 선사들의 물량이 크게 줄어들게 될 것이다. 자칫 구조조정인 해운사 문제를 해결해 해운업계 위기를 벗어나려다가, 그나마 위태로운 해운사들이 물량 부족으로 또 한 차례 경영난에 처하지나 않을지 걱정이 된다. 그러면서도 가스공사의 해운사들의 지분 참여 사례와 달리 기존 해운사들에 대한 지원이나 배려조건이 없다는 점도 큰 문제점이다.

3자 물류서비스 기업을 육성하고, 해운업계를 살릴 수 있는 정책적 대안이 필요하다는 미시적 문제 제기 말고도, 우리나라 주요 기간산업의 경쟁력 확보 측면에서도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대형 자가 운송사의 출현으로 해상운송의 비효율성이 높아져 철강, 전력 등 수입원자재의 운송비가 상승할 경우 경제성장의 큰 걸림돌이 될지 검토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벌크화물 운송시장은 전 세계적인 몇 안 되는 완전 자유경쟁(pure competition)시장이다. 세계적인 해상운송 전문기업들도 시점에 따라 큰 손실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치열한 시장에서, 화주 기업조직 내에서 운영되는 선박들이 운항 효율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쉬핑뉴스넷, 2014년 3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