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만공사, 글로벌 투자기업이 되어야
본문 바로가기

기고문

항만공사, 글로벌 투자기업이 되어야

15년 전인 2002년 외교부의 요청으로 아세안 회의에서 우리나라의 항만운영시스템을 지원하는 대 아세안 사업을 설명할 기회가 있었다.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여러 국가가 관심을 보였지만, 만장일치 회의운영방식에서 싱가포르의 반대로 사업이 추진되지 못했다. 결국 아쉽게도 이 제안은 베트남 항만 운영시스템 기본계획을 세워주는 사업으로 축소 시행되었다.

싱가포르는 당시 미국이나, 유럽으로 오가는 원양 컨테이너 화물을 싱가포르항에서 아세안 각국으로 환적 운송하는 환적 허브의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 이미 아세안 각국의 항만개발과 운영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반대 한 것이다.

중국은 최근 세계경영을 뒷받침해주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하에, 중국의 국영 항만운영사를 통해 해외에 총 19개의 터미널에 투자하여 자국기업의 해외 진출 교두보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이밖에 정부 및 공공기관으로 싱가포르의 PSA37개 해외 터미널에, 아랍에미리트의 DPW43개 해외 터미널에 투자하고 있다. 민간의 경우 홍콩의 HPH42개 터미널, 덴마크의 APMT40개 터미널 등 많은 항만운영사들이 해외 터미널에 투자하고 있다.

이와 같이 세계 주요 항만운영사들이 해외 터미널 개발 및 운영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 가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자국 항만물류의 활성화 기반을 구축하는 것, 또 하나는 세계 해운이 얼라이언스를 구성해 글로벌화하고 있는데, 이에 상응한 협상력을 보유하기 위해 세계 주요 거점항만에 터미널을 확보하는 것이다. 여기에 최근 중국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자국 기업의 해외진출 거점을 확보하기 위해 해외 터미널을 투자, 운영하고 있다. 항만운영사업은 더 이상 자국 내 산업이 아니라 글로벌 투자사업인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해외 물류거점 확보를 국적선사에 맡겨 놓았다. 우리의 항만운영사들이 영세하기 때문에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해외물류거점 확보를 추진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제 우리도 민간기업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정부나 공공기관이 이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우리의 경우 현 시점에서 이 역할을 맡을 수 있는 곳은 항만공사뿐이다.

특히 부산항의 경우 한진해운 사태 이후 국적선사와 얼라이언스로 맺어지지 않은 외국 선사들이 부산항을 떠나 중국이나, 일본항만으로 옮겨 갈 수 있는 불확실성이 높아졌다. 외국선사가 부산항에 머물 수 있도록 선사 마케팅활동을 강화해야 하지만, 화주에 대한 마케팅 전략도 추진해야 한다. 항만이 중국 등 동북아 항만 배후부지의 화주, 운송주선인들과의 관계를 맺어, 자신의 고객을 스스로 확보해야 한다. 이를 위해 부산항만공사가 중국 우한항 등 해외 환적항 터미널과 항만 배후부지 내륙 터미널이나 물류센터 등 복합운송업 등에 합작투자를 확대해 나가야 한다.

그러나 실상은 어떤가? 부산항만공사는 부채감축이라는 공공기관 목표에 부딪혀 국내외 터미널 투자사업 승인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항만 인프라와 항만배후단지를 조성하고 이를 터미널과 업체에 임대해주는 사업만 하고 있을 뿐이다. 국내외 터미널 개발과 운영 최적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세계 무역을 증진하는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코트라는 해외 126개소의 무역관을 해외에 두고 우리 수출 기업들을 지원하고 있다. 앞으로 세계 무역은 공급사슬관리(SCM) 물류경쟁력이 관건이다. 글로벌 터미널투자를 통해 우리기업의 SCM 거점을 확보하여 우리 수출기업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부산항만공사에게 국내외 터미널 투자의 길을 터줘야 한다. 이는 우리의 항만물류활성화 뿐 만 아니라, 무역 진흥을 통한 글로벌 성장동력을 창출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부산일보, 2017년 1월 20일]